#52 명장면은 집에 가는 길에


안 본 눈 삽니다, 안 본 뇌 삽니다. 엄청난 작품을 보고 나서 그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말인데요. 제 뇌는 영화 마니아들에게 비싸게 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 영화가 많지 않거든요. 그 유명한 <시네마 천국>도 재개봉을 틈타 이제야 봤다니까요.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이 좋다며 집에 OST CD도 사놨으면서!

책은 좋아하면서 왜 영화는 잘 안 보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만 가장 큼직한 건 빨리 넘길 수가 없어서입니다. 책은 재미없는 장면을 호로록 넘겨버릴 수 있지만 영화는 그렇게 빨리감기를 할 수 없잖아요. 집에서 본다 치면 장면을 앞뒤로 넘길 수야 있겠지만 그 장면이 나중에 보니 중요하더라~ 할 수도 있고요. 사실 시네마 천국도 집에서 몇 번 보려다가 가만히 앉아 있는 걸 버티지 못해서 재개봉을 기다리던 영화입니다. 이제야 때가 된 거죠.

1988년도 영화니 스포일러 주의는 붙이지 않아도 괜찮겠죠? 사실 줄거리 소개만으로는 스포일러라고 하기 뭐한 작품이었어요. 1940년대,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아이와 일 년에 딱 하루 겨우 쉬는 영사기사가 있던 시절.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꼬마 토토는 마을 유일 영화관 ‘천국 시네마Cinema Paradiso’의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영화를 매개로 친해집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들의 관계도 친구처럼, 아버지와 아들처럼 깊어지고요. 천국 시네마로 이어진 조연들의 이야기도 영화 내내 잔잔한 미소를 끊이지 않게 합니다. 여러모로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는 인생에 대한 영화였어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 '좋은 영화였다, 왜 고전 명작이라고 부르는지 알겠다' 같은 감상을 차근차근 마음에 정리했는데요.

좋은 말이면서 뻔한 말들이죠.
딱 그렇게 뻔하게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요, 집에 오는데요, 오는 길에 찔끔찔끔 눈물이 나는 거 있죠.

영사기 속 필름처럼 시네마 천국의 기억이 차르르륵 넘어가면서 장면장면이 다시 보였습니다. 누구라도 명장면 명대사라고 꼽을 만한 것들, 이를테면 유일한 친구 토토를 떠나보내며 “뭘 하든 네가 마지막에 하는 걸 사랑해라” 멋지게 한 마디 하고 애써 담담하게 눈물을 숨기는 알프레도의 모습 같은 건 물론이고요. 영화를 보면서 기억에 남을 거라고 예상치 못한 장면들이 계속 머릿속을 돌더라고요. 영화관에서 눈이 맞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운 부부, 영화관과 함께 나이 먹어간 많은 이웃들, 알프레도와 토토가 함께 걷던 길목 같은 것들, 집에서 잠깐 봤다면 좀이 쑤셔 딴짓 잠깐 했을 그런 평범한 장면들요.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았다면 그 장면들이 아름답다는 걸 아마 평생 몰랐을 겁니다.

영화든 책이든 앉은 자리를 뜨지 못하게 재밌는 것들이 있고, 바로 와 닿는 재미는 덜해도 나중까지 기억에 오래 남는 것들이 있습니다. 둘 다 좋은 작품인 건 분명하지만 제가 너무 한입에 단 것들만 찾아온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뒤돌았을 때 더 좋은 작품들을 좀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 조금 더 호들갑을 떨자면, 어쩌면 인생도 마지막을 맞기 전까지는 어느 순간이 명장면으로 남을지 알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인생 노잼이라며 풀 죽어 지내던 요즘이 중요한 반전의 복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흥미진진해지네요!
뒤돌아서 더 기억에 남는 소설

(...) 지난 8년 동안 사는 게 괴롭고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사회가 점점 나빠지는 것 같고 앞으로 더 나빠질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는데 그게 편견이고 착각이라는 걸 알았어요. 전체적으로는 좋아지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일상이 파괴되고 있잖아요. 이것만 해도 이렇게 힘든데 전쟁으로 인한 어려움은 지금 상황의 수천 배쯤 되지 않겠나 싶고,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런 사회를 건설했다고 생각하면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서 많은 사람이 희생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끝내 안 죽고 살아남아서 뭔가를 만들어 낼 것 같아요. 이게 인류가 가진 원동력인가보다 이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는 건 기업이나 권력의 힘이 아니고 이 힘이겠구나 싶었어요. 사람들이 살려고 하는 힘. 그 힘은 없어지지 않겠다는 생각이요.

(중략)

독자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쓸수록 쓰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했는데 이번 책을 쓰면서 구체적으로 상상한 독자가 있나요?

있어요. 제가 발표하지 않고 오래 쓰고 있는 소설이 있는데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어렵대요. “요즘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 거다”, “소설을 공부하면서 읽을 수는 없지 않냐”는 말을 들어서 고민했어요. ‘내가 잘하는 건 이건데 시대가 요구하니까 달라져야 하는 건가?’ 하고요. 이를테면 쉽게 읽히는 소설을 쓰고 가벼운 주제를 다루는 방향으로 변해야 하나 고민한 건데요. 이 소설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변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시대에 맞춰서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서 독자를 상상했죠. 

어려운 소설도 찾아서 보는 독자일까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순문학이라는 말을 싫어해서…. 영화로 치면 예술영화라고 해야 할까요. 의미나 상징이 많고 독자가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서 어떤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소설인데요. 이런 소설을 원하는 독자도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많지는 않겠지만요. (웃음) 그러면 아무래도 나이가 꽤 있는 분일 테고 생각이나 고민이 많은 분이 아닐까 싶어요.

- 김연수 "실패한 인생은 어떻게 계속되는가", 채널예스 인터뷰

김연수 작가를 좋아합니다. 흑과 백으로 나눌 수 없는 세상을 맑은 눈으로 보고 섬세하게 써낸 글이 참 좋아요. 이번에 8년 만에 나왔다는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도 소식 듣자마자 일반판과 동네서점에디션을 모두 초판으로 사두었어요. 이건 분명히 좋은 소설일 거다 확신이 있었거든요.

그랬는데, 마지막 장을 덮은 직후에는 누구에게도 감상을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재미가 없었거나 작품성이 떨어졌다는 건 절대 아닌데, 묵직해서요. 이 작품을 누구에게 어떻게 추천할까 떠오르질 않더라고요. 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오랫동안 몰랐던 북쪽의 백석 시인이 주인공인데요. 문학과 삶은 뒷전이고 사상만이 남아 더는 시를 쓰지 못하는 세상, 마음에 가득 찬 시들을 풀어내면 내가 죽는 그 시인의 마지막 일곱 해에는 어디에도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얼떨떨하면서도 종종 소설 속 장면이 하나둘 떠오르는 게 신기했는데요.

얼마 전 작가의 인터뷰를 읽고 나서야 소설을 다 이해하지 못한 내가 유난히 이상한 사람은 아니구나 안심이 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처럼 사랑에 대한 반짝임이 돋보이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김연수 작가의 사람에 대한 사랑은 생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것이니만큼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종류의 반짝임을 발견할 수 있겠구나 싶고요. <시네마 천국>을 언젠가 다시 보고 싶은 것처럼 <일곱 해의 마지막>도 언제 또 다시 읽고 싶어요.

김연수 작가 인터뷰 읽기 (yes24)
우리들의 솜사탕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

바나나맛 우유님의 편안함이 조금은 전해졌나 봐요! 다행입니다 ㅎㅎ

소개해주신 바나나맛 우유님의 이야기가 참 좋았습니다. 바나나맛 우유님도, 그분의 장점들을 잘 캐치해주시는 여름님도 좋았어요. 저는 바나나맛 우유님처럼 양손 무겁게 해서 주변인들을 챙기다가도, 여름님처럼 마음속 가계부에 적어놓는 날도 있거든요😂 여름님이 바나나맛 우유님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는 것처럼 저를 좋게 봐주는 친구들이 생각났어요. 바나나맛 우유님과 비슷한 친한 친구에게 더 잘해야겠다고도 생각했구요! 기분 좋게, 그리고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바나나맛 우유 같은 분들이야말로 세상을 좀 더 살 맛 나게 하는 이웃집 히어로들이 아닐까 합니다. 이야기 보내주신 분께서도 그런 엄청난 역할을 맡고 계시는군요! 양손 무겁게 누군가를 챙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빈도랑 상관없이 감사받으셔야죠. 가계부 적는 사람으로서 잘할 수 있는 건 장부에 빚진 그 고마움을 이자 쳐서 갚는 것이니까, 저도 잊지 않고 받은 만큼 돌려드리겠다는 다짐 전해봅니다. 솜사탕도 그 중 하나로 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저도 보내주신 이야기 덕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 솜사탕을 함께하는 분들과 나누고픈 이야기, 이번 솜사탕에 대한 감상 등을 여기 '내 이야기 남기기' 버튼이나 맨 아래의 ‘이번 솜사탕 어떠셨나요?’ 의 링크를 눌러 전해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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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주 여름이 고른 노래 ♬

초딩 때부터 친구였다는 김연수 작가랑 김중혁 작가, 둘이 합심해서 영화 이야기를 써낸 <대책 없이 해피엔딩> 이라는 책이 있어요. 내용은 기억에 없고 제목만큼 발랄한 책이었다는 인상만 남았는데 영화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된 지금 읽으면 더 재밌지 않을까 궁금하네요. 이 곡에는 그렇게 대책 없이 밝고 희망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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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쏠라님, 이번 솜사탕 함께해 주셔서 감사해요!
좋은 장면으로 남을 한 주 보내시길 바랄게요.
다음주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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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 어딘가 · 서울시, 한복판 08786 ·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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